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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景福34 제74차 文化遺産踏査: 칸의 帝國 몽골(3-1)-국립중앙박물관 (4-1)

무용 2018. 7. 21. 22:00

 

景福34 74차 文化遺産踏査: 칸의 帝國 몽골-국립중앙박물관

景福34 74차 文化遺産踏査는 2018.07.10() 10:00 國立中央博物館 으뜸홀에

24(부인 7명 포함)이 집결하여 매번 수고하는 白九 同門의 안내와 解說로 特別展

<칸의 帝國 몽골>과 先史∙古代館의 주요 전시품을 관람하고 南營洞 미성회관에서

뒤풀이로 마감하였다.

-전시장소;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전시기간; 2018.05.16~07.17

-전시품: 빌게 카간 祭祀遺跡 출토 金冠 등 536

국립중앙박물관은 몽골 과학아카데미 역사학 고고학연구소, 몽골국립박물관,

복드 한 궁전박물관과 공동으로 특별전 <칸의 제국 몽골>을 전시하고 있다.

韓蒙 共同學術調査 20주년을 기념하여 마련한 이번 전시에는 先史時代부터 近現代에 이르는

몽골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몽골 국가지정문화재 16건을 포함한 536점의 귀중한

遺産을 선보인다.

이 전시는 遊牧文化에 대한 理解의 폭을 넓히는 동시에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이다.

=전시구성

-프롤로그. 몽골의 환경과 역사

몽골 사람들은 대체로 東西로 다싱안링[大興安嶺]山脈에서 알타이山脈, 南北으로

바이칼湖에서 萬里長城 사이의 땅을 주된 根據地로 살아왔다.

이 領域의 북쪽은 시베리아, 남쪽은 고비砂漠이며, 몽골사람들은 그 중간 大草原을 무대로

遊牧生活을 꾸려 왔다.

이들 北方遊牧民들은 繁榮과 衰退가 반복되는 역사의 긴 旅程 속에서 大帝國을 건설하여

東西文化의 交流와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등 世界史에 깊고 굵은 발자취를 남겼다.

-1. 帝國의 黎明  (*: 검을 여)

몽골에서 인류가 살기 시작한 것은 적어도 80만 년 전으로, 石器時代는 舊石器時代,

中石器時代, 新石器時代로 구분된다.

靑銅器는 BC 3,000년기 후반에 처음 나타나, BC 1,000년기 초반부터 널리 쓰였으며 이 시기

청동기의 특징은 여러 動物 모습을 표현한 점이다.

-2. 古代 遊牧 帝國

몽골지역에서는 BC 3세기 무렵 匈奴 최초로 국가를 세웠으며, 뒤를 이어 유목민족인

鮮卑 柔然 활동하였다.

AD 6세기 중반부터 9세기 말까지는 突厥, 위구르, 키르기즈가 세운

국가들이 몽골지역을 지배했으며, 10세기 초부터 契丹이 등장하였다. 여러 遊牧國家 가운데

匈奴帝國(BC 3세기~AD 1세기)과 突厥帝國(552~745)의 유적이 최근에 활발하게 조사되어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 그 궐)

匈奴는 중국 (BC 221~BC 207) (BC 202~AD 220) 나라와 맞설 만큼 강력하여

東西文明을 이어 주며 다양한 유적을 남겼으며, 突厥은 아시아 내륙의 草原과 오아시스

대부분을 하나로 통합한 巨大遊牧帝國으로 성장하였다.

그들이 만든 祭祀遺蹟에는 古代 突厥文字로 쓴 기록을 포함하여 돌궐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산이 남아 있다.

-3. 칭기스 칸(成吉思汗)의 몽골帝國과 그의 後裔들 (*: 후손 예)

몽골은 13~14세기 太平洋沿岸에서 동유럽, 시베리아에서 남아시아에 이르는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超巨大 帝國을 건설하였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교량역할을 하며

많은 국가와 種族의 정치, 경제, 문화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몽골제국의 수도

카라코룸과 타반 톨고이의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당시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14세기 중반 전후에 붕괴된 몽골제국은 草原으로 후퇴했으며, 17세기에 滿洲人들이 세운

淸 帝國에 服屬되었다가 1911년 독립을 선포하였다.

티베트佛敎는 16세기부터 널리 퍼졌는데, 定住生活과 佛敎寺院 주변의 都市化 등 社會가

변화되었다.

-에필로그. 우리 역사와 遊牧國家

광활한 草原에서 이동하며 생활하는 遊牧民에게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은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었다. 북방 유목민들은 동서남북에서 일어나는 지속적인 변화와 흐름을 서로 이어주는

架橋역할을 하며 세계사의 큰 흐름 속에 등장했다가 사라지기를 거듭하였다.

古朝鮮과 高句麗는 遊牧國家인 匈奴, 突厥 등과 국경을 마주하며 경쟁을 펼쳤으며,

高麗는 몽골제국의 침략을 받아 큰 시련을 겪었으나 몽골제국의 등장으로 본격화된

東西間의 교류를 배경으로 국제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朝鮮時代에도 몽골어 학습서를 발간하여 譯官을 양성하는 등 몽골 세력과의 소통을 이어갔다.

지난 6 21()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칸의 帝國 몽골>을 관람했는데 카메라로는

사진촬영 불가로 이동전화기로 찍었는데 展示品과 설명서의 照明이 너무 어두워 사진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다시 가려고 했는데 마침 제74차 문화답사 대상으로 선정되어 다시 보게 되었다.

사진을 4회로 나누어 올린다.

 

                     2018. 07.13    孤 山  朴 春 慶

 

 

景福34 74차 文化遺産踏査: 칸의 帝國 몽골(3-1)-국립중앙박물관 (4-1)

 

칸의 帝國 몽골

(01) 으뜸홀 계단 위에서 平澤으로 移轉하는 龍山의 美軍基地 일대를 바라보면서….

 

(02) 열린공간에 설치한 몽골족[蒙古族]의 이동식 전통가옥, 게르(Ger)

 

(03) 게르 내부

 

(04) 몽골 고비사막 줄친캠프의 現地 게르   -2004.07.18 사진-

景福山友會에서 매년 거행하는 해외산행의 일환으로 몽골 체체궁산(2,256m)을 등반하고

고비砂漠을 트레킹하면서 1泊한 게르이다.

 

(05) 몽골 고비사막 줄친캠프의 現地 게르릐 內部   -2004.07.18 사진-

 

(06) [칸의 帝國 몽골] 포스터

 

(07) 유라시아(Eurasia)의 草原地帶

草原地帶는 유라시아大陸의 東西로 길게 띠를 이루며 펼쳐져 있다.

동쪽의 大興安嶺山脈에서부터 몽골草原, 카자흐스탄, 黑海沿岸을 거쳐 헝가리까지 이어지는

東西間 거리 7,000km에 달하는 이 草原地帶는 역사상 수많은 유목민족의 고향이었다.

遊牧民은 초원지대를 자유롭게 이동하며 牧畜經濟를 바탕으로 광대한 帝國을 건설하였다.

 

石器時代

 

 

 

 

(08) 대형 긁개[搔器] (왼쪽부터) – 찍개[單面器] – 긁개[搔器] – 뽀족끝 찍개[尖頭器] 

                         -舊石器時代  (*: 긁을 소)

 

(09) 찌르개[尖頭器] – 원반형 몸돌[圓盤形 石核]  -中期 舊石器時代

 

(10) 갈판과 갈돌[碾石, 碾石棒]  -新石器時代  (*: 맷돌 연)

 

               

           (11) 토기[土器]  -신석기시대

 

先史時代 遊牧生活

(12) 청동 솥[] (왼쪽) – 청동 솥[] (*: 솥 복)

=청동 솥[] (왼쪽)  -初期鐵器時代 (BC 7~5세기)

 청동 솥은 이동하며 생활하는 草原遊牧民의 삶을 잘 보여주는 생활용품이다.

 모닥불에 걸쳐놓고 간단하게 調理할 수 있는 주방용품으로 제격이다.

 金屬製 솥은 BC 8~9세기경 유라시아 草原지대에서 등장하였다.

=청동 솥[]  -初期鐵器時代 (BC 5~3세기)

 

(13) 돌 거푸집[石製 鏞范](왼쪽) –돌도가니[石製 陶范] -靑銅器時代(BC 5~2세기) (*: 쇠북 용)

 

(14) 청동 솥[]  -초기철기시대 (BC 7~3세기) 

 

(15) 재갈과 굴레장식[馬銜, 馬勒裝飾]  (*: 재갈 함 *: 굴레 륵))

=재갈과 굴레장식[馬銜, 馬勒裝飾] (왼쪽)  -초기철기시대 (BC 8~7세기)

 

=재갈과 굴레장식[馬銜, 馬勒裝飾]   -초기철기시대 (BC 5~3세기)

 

 한 쌍의 그리핀이 서로 반대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의 이 나무조각들은 굴레를 꾸미는

 굴레장식이다.

 리핀은 굽은 부리와 물방울 모양의 둥근 눈을 가진 想像의 동물로, 파지리크 문화에

 속하는  무덤에서 이런 형태의 재갈과 굴레장식이 많이 발견된다.

 

(16) 1. 2 청동허리띠고리[靑銅 鉸具] – 3, 청동동물모양장식[靑銅 獸形裝飾] –

       4. 청동장식[靑銅裝飾] – 5. 청동동물모양 장식[靑銅 獸形裝飾]  -초기철기시대

 

              

         (17) 산양모양 칼자루 끝 장식[羊形劒把頭飾]  -초기철기시대(BC 7~3세기)

     山羊 두 마리를 사실적으로 조각한 靑銅器로 칼자루 끝에 끼우는 장식이다.

     이런 동물장식 칼자루는 草木遊牧民들 사이에서 널리 유행했으며,

     집에서 기르는 짐승부터 想像의 동물까지 다양한 동물들을 묘사했다.

 

(18) 맹수 조각 머리띠[木製冠飾]  -초기철기시대(BC 5~3세기)

 

(19) 청동 칼[銅刀]  -청동기시대(BC 13~10세기)

 

(20) 청동 단검과 나무 검집[靑銅 短劍, 木製鞘] – 쇠 단검과 나무검집[鐵製 短劍, 木製鞘](오른쪽) 

                (*: 칼집 초)

=청동 단검과 나무 검집[靑銅 短劍, 木製鞘]  -초기철기시대(BC 5~3세기)

 

=쇠 단검과 나무 검집[鐵製 短劍, 木製鞘]  -초기철기시대(BC 5~3세기)

  短劍은 初期鐵器時代에 유라시아 草原의 유목민들이 사용하던 대표적인 무기가운데

  하나이다.

  칼집의 안쪽은 소나무로 만들고 나머지는 가죽으로 덮었다. 검집에는 둥글게 돌출시켜

  가운데 구멍을 뚫은 돌기가 있는데, 여기에 끈을 끼워 허리띠에 매달았던 것으로 보인다.

 

               

          (21) 청동 투구[靑銅胄]  -靑銅器時代(BC 11~9세기)

                                                  -몽골 역사학고고학연구소 소장

      後期靑銅器時代와 初期鐵器時代에 內蒙古지역에서 북부 캅카스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용한 靑銅鬪具이다.

      BC 11세기~BC 3세기까지 遊牧文化가 퍼진 지역에서 사용하였다.

 

(22) 전투용 도끼[]  (*: 도끼 척)

 

(23) 청동 화살촉[銅鏃](왼쪽) – 쇠 투겁창[鐵矛]  -초기 철기시대 (*: 화살촉 촉 *: 창 모)

 

(24) 겉옷, 모자, 바지, 신발[外套, 帽子, , 長靴]  -몽골 국보-  -초기철기시대(BC 5~3세기)   

                               (*: 씌울 투 *: 바지 고)

=겉옷[外套]

 몽골 서북부지역의 永久凍結層에 있는 파지리크 무덤에서 사람의 살과 머리카락,

 동물 털로 만든 옷이 발견되었다.

 무덤주인의 옷은 말, 사슴, 담비, 다람쥐 등 여러 동물들의 털과 가죽, 毛織物로 만들었다.

 모자는 펠트로 만들었으며 꼭대기에 새 모양 나무장식을 달았다.

*펠트(felt): 양털이나 그 밖의 짐승의 털에 습기, , 압력을 가하여 만든 천으로 신발,

                모자, 양탄자 따위를 만드는 데 쓴다.

 

(25) 사슴과 사람이 있는 항아리(土壺)(왼쪽) – 토기[土器]  -초기철기시대(BC 7~5세기) 

                                                                                    (*: 병 호)

 

                

            (26) 안장과 등자[鞍裝, 鐙子]  -19~20세기  -수집품 

                                                      -몽골국립박물관 (*: 등자 등)

 

               

           (27) 古代 遊牧帝國

       *흉노[匈奴]: BC 3세기 말부터 AD 1세기 말까지 몽골高原∙萬里長城 지대를

                 중심으로 활약한 遊牧騎馬民族 및 그들이 형성한 北蒙古 중앙아시아

                 일대의 국가를 일컫는 말.  (*: 말 탈 기)

 

(28) 말띠 드리개[杏葉]  -匈奴時代(BC 1세기~AD 1세기  (*: 살구 행)

여러 馬具를 설치하거나 고정하는데 필요한 장치를 말띠라고 하며, 말의 몸을 돌아가는

가슴걸이와 후걸이를 늘어뜨리는 장식이 말띠드리개이다.

 

(29) 인물을 수놓은 직물[刺繡人物紋織袍]  -匈奴時代(BC 1세기~AD 1세기 

                                       (*: 찌를 자 *: 수놓을 수 *: 무늬 문 *: 도포 포)

匈奴 지배층 무덤 내부를 장식했던 織物로, 행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색실을

사용해 刺繡로 표현했다.

이 행사의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최근에 직물의 原産地가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지역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흉노의 對外交流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30) 헤라클레스와 옴팔레[Hercules and Omphle]

 

(31)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32) 그리스 神이 있는 銀製 裝飾  -흉노시대(BC 1세기~AD 1세기)

그리스 女神이 호랑이가죽에 앉아 있는 男性惡魔를 밀어내는 모습으로 그리스

헬레니즘美術의 특성을 보인다.

당시 수입품으로 흉노가 西域과 활발하게 교류 했음을 보여준다.

 

(33) 해와 달 모양의 금제 목관장식[金製 木棺裝飾](왼쪽부터) - 금제 목관장식[金製 木棺裝飾]

             - 해와 달 모양의 철제 목관장식[鐵製 木棺裝飾] -흉노시대(BC 1세기~AD 1세기)

=해와 달 모양의 금제 목관장식[金製 木棺裝飾]  (*: 널 관)

흉노 지배층 무덤의 木棺 안쪽에서 발견된 圓形과 초승달 모양의 金製品이다.

목관 내부 무덤주인의 머리맡을 장식한 금제품으로 해와 달을 상징한다.

무덤주인이 저승에 잘 가도록 祈願하는 의미하거나 匈奴라는 국가의 상징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34) 허리띠고리, 허리띠 장식  -흉노시대

      1. 청동 허리띠고리  2. 청동 허리띠 장식  3. 금제 허리띠장식  4. 금제 상감 허리띠고리

      5. 청동 허리띠고리  6. 청동 허리띠 장식

 

= 4. 금제 상감 허리띠고리[鉸具]  -흉노시대(BC 1세기~AD 1세기) (*: 가위 교)

   보석을 象嵌한 金銅 허리띠장식으로, 匈奴의 지배층이 사용한 것이다.

   허리띠장식에 動物 紋樣을 장식한 것은 初期鐵器時代부터 이어온 遊牧民의 전통이지만,

   龍과 뱀을 표현한 것은 흉노시대에 나타난 새로운 용소이다. (*: 깊은 골짜기 감)

 

(35) 청동 솥[] – 쇠솥[](오른쪽)  -흉노시대(BC 1세기~AD 1세기) (*: 솥 복)

 

(36) 청동 쟁반[銅盤] – 바리[]   -흉노시대(BC 1세기~AD 1세기) (*: 바리때 발)

 

(37) 항아리[](왼쪽부터) – 작은 토기[小型土器] – 손잡이가 달린 바리[把手附鉢]

       – 장군모양 토기[橫缶]   -흉노시대(BC 1세기~AD 1세기) (*: 잡을 파 *: 장군 부)

 

(38) 쌍 항아리[雙壺]  -흉노시대(BC 1세기~AD 1세기)

 

(39) 청동 주전자[靑銅注子]  -흉노시대(BC 1세기~AD 1세기)

 

(40) 전돌[] – 수막새[圓瓦當]  -흉노시대(BC 1세기~AD 1세기) (*: 벽돌 전)

 

      -景福34 74차 文化遺産踏査: 칸의 帝國 몽골(3-2)-국립중앙박물관(4-2)에 계속-

출처 : 景福高 34回 同窓會
글쓴이 : 孤 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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