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450화
가장 듣기 좋은 소리 (喜聽裙聲)
송강 정철(鄭澈:1536∼1593)과 서애 유성룡(柳成龍:1542∼1607)이 어느 날 교외에서 손님을 전송하기 위해 서로 약속을 하고 나갔다.
옛날에는 지방 관직을 맡아 떠나거나 낙향하게 되면 작별하는 날 떠나가는 쪽 도성 밖 교외에 차일을 쳐서 미리 자리를 마련한뒤 친분이 두터운 사람들이 술과 안주를 마련해 와서 대접을 하고 작별하는 전송 행사가 있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는 백사 이항복(李恒福:1566∼1618)과 일송 심희수(沈喜壽:1548∼1622) 월사 이정구(李廷龜:1564∼1635)도 함께 참석하게 되었다.
술이 몇 바퀴 돌아 모두들 얼큰해지니 한 사람이 제안을 했다.
『우리 돌아가면서 한 구절씩 짧은 글귀를 짓되 그 내용을 가장 품위 있고 듣기 좋은 소리로 읊어 보도록 합시다.』 이에 송강 정철이 나서서
『淸宵朗月 樓頭알雲聲 (청소낭월 누두알운성):맑은 밤 밝은 달빛이 누각의 머리를 비추는데 이를 가리며 지나가는 구름 소리』라고 읊으며 이 소리가 가장 좋다고 했다.
이어 일송 심희수가 받아 다음과 같이 말하며 읊었다. 『내 그보다 더 고상하고 좋은 소리를 나타내 보겠으니 어디 한번 들어 보시오.
『滿山紅樹 風前猿嘯聲 (만산홍수 풍전원소성):온 산 가득 찬 붉은 단풍에 바람 앞을 스쳐 울리는 원숭이의 휘파람 소리 이 소리야말로 절품이 아니겠소?』
그러자 서애 유성룡이 은은한 목소리로 『曉窓睡餘 小槽酒滴聲 (효창수여 소조주적성):새벽 창 잠결에 들리는 작은 통에 술 거르는 소리』라고 읊으며 이 소리가 더 매력적이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때 월사 이정구가 받더니 『山間草堂 才子詠詩聲 (산간초당 재자영시성):산골 마을 초당에 도련님 시 읊는 낭랑한 그 목소리라고 읊자 마지막까지 듣고 있던 백사 이항복이 웃으면서 말했다.
『여러분들이 들려준 그 소리도 모두 좋기는 한데 아마도 내 지금 읊는 이 소리만은 못할 것이요. 한번 들어 보시지요.』 하고는 목청을 가다듬어 이렇게 읊었다.
『洞房良銷 佳人解裙聲 (동방양소 가인해군성):깊숙한 방안 좋은 밤에 아름다운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이에 모두들 그 소리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하면서 한바탕 크게 웃었더라 한다.
-출처 : 들꽃향기- |